[열린광장] 6.25 전쟁 75주년에 즈음하여
1950년 6월25일 새벽 4시,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 소련제 탱크가 나타나 평화를 짓밟았다. 북한군의 남침으로 시작된 6.25 한국전쟁은 한반도의 운명을 뒤흔든 역사적 사건이다. 3년1개월간의 전쟁으로 수백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국토는 폐허가 됐다. 미국을 포함한 16개국의 유엔군이 참전했고, 중국공산군 또한 개입하면서 한국 전쟁은 국제전 양상으로 확대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에서 6.25전쟁은 해가 가면서 점점 희미해져 가는 듯하다. 반면 미국에서는 여전히 ‘Korean War’라는 이름으로 전쟁의 의미가 강하게 남아 있다. 어쩌면 한국인보다 미국인이 더 한국전쟁을 잘 알고 있다는 예기다. 흔히 미국인에게 한국전쟁은 ‘잊혀진 전쟁(Forgotten War)’이라 불리지만 참전용사와 그 가족들에게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한국전쟁은 냉전 시대 미국의 개입과 희생을 상징하며 워싱턴 D.C. 한국전 참전 기념공원(Korean War Veterans Memorial)에도 전쟁의 기억이 새겨져 있다. LA에서 북서쪽 60마일가량 떨어진 곳에 샌타폴라(Santa Paula)라는 인구 2만 명의 작은 농촌 도시가 있다. 이곳에선 매년 한국전에서 희생된 이 고장 출신 전몰장병 추모식이 열린다. 백발의 한 할머니는 “오렌지 밭에서 일하던 오빠가 소집영장을 받고 떠난 지 얼마 안 되어 머나먼 한국땅에서 전사했어요”라며 고인의 명패가 있는 자리에 꽃다발을 놓고 옆자리에 앉아 눈물을 흘린다. 그곳 인근을 지나는 하이웨이 126번 도로에는 ‘Korean War Veterans Memorial Highway’라는 표시판이 서있다. 미국 전역에 여행하다 보면 크고 작은 한국전 참전 기념물을 보는 경우가 많다. 미국은 베트남전쟁보다 한국전쟁을 더욱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이 전쟁 후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루며 ‘기적’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란 생각이다. 하지만 한국은 전쟁의 피해를 직접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6.25 전쟁을 점점 잊는 듯하다. 급격한 경제 성장과 세대 변화로 인해 젊은 층은 전쟁보다 현재의 삶에 더 집중하는 것 같다. 특히 남북관계가 복잡한 가운데 정치적 이유로 전쟁의 의미가 변화하기도 한다. 또한 한국에서는 6.25전쟁을 남북한 간의 역사로 보는 시각이 강한 반면, 미국에서는 공산주의와 자유진영 간의 충돌이라는 국제적 이념사건으로 바라본다. 한국전쟁은 잊지말아야 하고 꼭 기억해야 할 이유가 있다. 6.25전쟁은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현재에도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다. 전쟁으로 인해 분단이 고착화되었으며, 북한 핵 문제 등 현재의 안보 문제 또한 전쟁의 결과와 연결된다. 따라서 세대가 바뀌어도 전쟁의 교훈을 기억하고, 역사 속에서 현재를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전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를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잊지 않는 것이다. 한국인이든 미국인이든, 6.25전쟁은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의 뿌리이기도 하다. 전쟁의 참혹함을 기억하는 것은 단순한 역사 교육을 넘어 평화의 가치를 되새기고 미래를 위한 교훈을 얻는 중요한 과정이다. 군인의 헌신과 희생을 잊지 않기 위해, 전쟁의 교훈을 통해 다시는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역사적 사실을 바로 알기 위해 올바른 인식을 전해야 한다. 모름지기 기억하는 것이 곧 평화를 위한 첫걸음이다. 이재학 / 6.25 참전유공자회 회장열린광장 전쟁 한국 전쟁 전쟁 75주년 한국전 참전